◆--상담소 사랑방/마음의샘

5달러 짜리 자전거

구미여성종합상담소 2011. 7. 25. 11:29

 

 

 

 

 

 

 

 

 

5달러 짜리 자전거


외국의 어느 자전거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따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저마다 좋은 자전거를 적당한 값에 사기 위해 분주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주고객인 그 경매장 맨 앞자리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고,

소년의 손에는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소년은 아침 일찍 나온 듯 초조한 얼굴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경매가 시작되었고, 소년은 볼 것도 없다는 듯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고 "5달러요!"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곧 옆에서 누군가 “20달러!”하고 외쳤고, 그 20달러를 부른 사람에게 첫번째 자전거는 낙찰되었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달러는 어림도 없이 15달러나 20달러, 어떤 것은 그 이상의 가격에 팔려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보다못한 경매사는 안타까운 마음에 슬쩍 말했습니다.
"꼬마야, 자전거를 사고 싶거든 20달러나 30달러쯤 값을 부르거라.”
"하지만 아저씨, 제가 가진 돈이라곤 전부 이것 뿐이에요.”
"그 돈으론 절대로 자전거를 살 수 없단다. 가서 부모님께 돈을 더 달라고 하려무나.”
"안돼요. 우리 아빤 실직당했고, 엄만 아파서 돈을 보태 주실 수가 없어요.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동생한테 꼭 자전거를 사가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소년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아쉬운 듯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하지만 경매는 계속되었고 소년은 자전거를 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일 먼저 5달러를 외쳤고,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소년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 날의 마지막 자전거.
이 자전거는 그 날 나온 상품 중 가장 좋은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경매를 고대했었습니다.
"자, 최종 경매에 들어갑니다. 이 제품을 사실 분은 값을 불러 주십시오.”
경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소년은 풀죽은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역시 손을 들고 5달러를 외쳤습니다.
아주 힘없고 작은 목소리였습니다.


……경매사는 꼭 이 자전거를 소년이 사갈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주변 사람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졌나 봅니다.
순간 경매가 모두 끝난 듯 경매장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다른 값을 부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5달러요. 더 없습니까? 다섯을 셀 동안 아무도 없으면 이 자전거는어린 신사의 것이 됩니다.”
경매사는 밝은 웃음을 가득 머금은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팔짱을 낀 채 경매사와 소년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5… 4… 3… 2… 1. 이번 자전거의 최종 낙찰자는 어린신사 입니다.”


"와~아!!!!!!!!!!!!!!”
마침내 소년에게 자전거가 낙찰되었다는 경매사의 말이 떨어졌고,

소년은 손에 쥔 꼬깃꼬깃한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경매사 앞에 내 놓았습니다.


순간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소년을 향해 일제히 박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 

 

훗날 이 자전거를 받게 된 동생은 형의 마음을 알았었는지 비가 오나 눈이오나 매일 자전거를 탔다고 합니다.

이 동생이 바로 사이클을 타고 알프스산맥과 피레네산맥을 넘으면서
프랑스 도로를 일주하는 「투르 드 프랑스」대회에서 최초로 6연패를 달성한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 입니다.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 Story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
미국 사이클 황제 · 암투병 승리자 이야기

 

▶1971년 9월 18일생
▶99~2005년 투르 드 프랑스 7연속 우승
▶97년 랜스 암스트롱 재단(
www.livestrong.org) 설립

 

 랜스 암스트롱은 세계적인 사이클 선수로 각광받기 시작하던 1996년, 25세의 나이에 고환암 진단을 받았다. 암세포가 폐와 뇌까지 침투한 탓에 생존 확률이 40%도 안 됐지만 고환 한 쪽을 잘라내고 뇌를 절단하는 대수술을 거친 끝에 다시 일어섰다. 그가 사이클계에 복귀한 것은 98년 2월. 16개월 동안의 항암 치료를 마친 뒤였다. 그러고는 이듬해 ‘죽음의 레이스’로 불리는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 일주 도로사이클)에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7년 연속 정상에 오르는 위업을 이뤄냈다. 어렸을 때에는 돈을 벌기 위해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경기에 출전했고, 고교 졸업 후 본격적으로 사이클을 시작했다. 암스트롱은 ‘오늘은 남은 인생을 시작하는 첫날이다’‘암은 내 육신을 바꿔놓은 게 아니다. 내 정신을 바꿔놓았을 뿐이다’ 등 암과 관련한 수많은 명언을 쏟아냈다.   

투병을 극복하고 세계 정상에 선 인간승리의 표본 랜스 암스트롱 

 

고통은 순간이다.
결국 고통은 사라지고 다른 게 그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중도에 포기하면 고통은 영원히 지속된다.

-– Lance Armstrong    미국 사이클 황제·암투병 승리자

 

 

“암에 걸리기 전까지 나는 사이클을 타다가 트럭에 치여 죽는 게 아닐까 걱정하곤 했다. 차에 치여 다친 게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사이클 선수들은 도로 위에서 크고 작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래서 현역 시절엔 항상 다리털을 면도날로 깨끗이 밀고 다녔다. 깨끗하게 면도를 해야만 살에 돌이 박혀도 상처를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이기가 쉽기 때문이다.

2004년 투르 드 프랑스 때는 한 관중의 가방에 걸려 넘어졌는데 약간의 타박상만 입고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은퇴하고 난 뒤엔 다리에 난 털을 깎을 필요가 없어졌다.”

 

 

-랜스 암스트롱 재단을 설립한 뒤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암스트롱 재단은 이제 ‘Live Strong(굳세게 살라)’재단으로 불린다. 이 문구가 새겨진 노란색 고무팔찌를 만들어 1달러에 팔았는데 이제까지 6000만 개가 넘게 팔려 나갔다. 총 모금액수는 2억 달러 정도다.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암은 무서운 병이라는 걸 알리고 암 퇴치에 적극 나서도록 각계 각층의 인사들과 접촉하고 있다.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암이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도록 후보들을 만나 설득하는 것도 내 임무다.”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한다. 고환암에 걸렸던 탓에 2세를 갖기가 쉽지 않았는데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선물이자 큰 축복이다(그는 체외 수정으로 아들 1명과 쌍둥이 딸을 얻었다). 요즘에도 사이클을 타고, 달리기를 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뉴욕 마라톤에 출전할 예정이다. 지난해 뉴욕 마라톤에선 2시간59분대에 골인했는데 올해는 4시간 정도에 골인할 수 있도록 일부러 천천히 달릴 계획이다. 천천히 뛰면서 더욱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한국의 암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암에 걸렸다면 강한 정신 자세로 맞서 싸워야 한다.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된다. 암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고, 항상 질문을 던지라고 권하고 싶다.”

 

 

 

- 글,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k2drag/16959228

- 편집 : 아주 특별한 성공